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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날아라! 문감독 | 문감독
원문 http://blog.naver.com/getfly/120044539772


영화와 텔레비전의 경계가 허물진다

텔레비전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대형 디스플레이의 발달과 HDTV가 가져다주는 고화질은 시청자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도 이러한 추세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SBS의 ‘로비스트’, MBC의 ‘태왕사신기’는 영화 못지않은 스케일과 촬영 기법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또한 IPTV의 등장은 원하는 프로그램과 최신 영화를 편하게 안방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영화산업 관계자들은 관객이 줄어들고 있다고 아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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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시대를 열고있는 대작 <태왕사신기>

1950년대 미국이 그랬습니다.
막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의 유행은 광풍에 가까웠습니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영화산업은 침체기에 들어섭니다.
이때 대응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3D 입체영화였습니다.
입체영화의 등장은 영화관에 발길을 끊었던 관객들을 극장으로 되돌리는데 큰 역할을 하게됩니다.
요즘 헐리우드에서는 CSI, 24, 로스트 월드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항하고
불법복제의 늪에서 벗어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해결책으로 최근 헐리우드에서 찾아낸 답은 3D입체영화입니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베오울프도 3D로 제작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지만 입체영상이 가져다 주는 사실감과 새로움에 흥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놀이공원이나 IMAX영화관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입체영화는 이제 디지털 기술의 옷을 입고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어떻게 입체를 볼 수있나?

우리에게 눈이 없다면 세상과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볼 수 없고 나를 둘러싼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을 살펴보면 두 개의 눈이 가로방향으로 약 65㎜ 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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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나타나는 “양안시차(binocular disparity)”가 입체감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좌, 우의 눈은 각각 서로 다른 2차원의 상을 보고 두 개의 상이 망막을 통해 뇌로 전달됩니다.
그러면 뇌는 두 개의 상을 정확히 합성해 3차원의 원근감과 실재감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3D 입체영상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도 사람의 눈과 같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의 위치 차이에 의해 서로 다른 영상을 받아들이면 두 영상을 합성해 입체영상을 만듭니다.

3D 입체영상 기술의 역사

평면에 입체감을 주는 방법이 아닌 진정한 “입체보기”에 대한 시도는 1833년 영국의 발명가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1802-1875) 에 의해 처음 이뤄졌습니다. 두 개의 간단한 도형을 하나는 왼쪽 눈이 바라본 모양, 다른 하나는 오른쪽 눈이 바라본 모양으로 그리고, V자 형태로 배열된 두 개의 거울이 각기 하나의 도형을 비춰서 두 도형을 바라보는 장치를 개발한 것입니다. 휘트스톤은 이 장치를 “입체경(stereoscope)”이라 불렀습니다.
최초의 3D 이미지가 탄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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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1802-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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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스톤의 입체경


1839년, 프랑스의 다게르(Louis-jacques Daguerre, 1787–1851)가 “다게레오타입 (Daguerre type)”이라는 이름의 은판 사진술을 발표했습니다. 세상에 사진의 존재가 처음으로 공개 된것입니다. 이 때부터 두 개의 렌즈를 갖춘 특수한 카메라를 이용해 3D 촬영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은 입체화(stereograph), 입체도(stereogram)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슬라이드 유리나 보드 위에 사진 한 쌍을 나란히 배치한 형태였습니다.

1849년 스코틀랜드의 과학자이자 만화경(Kaleidoscope) 발명가인 브루스터(David Brewster,1781–1868)는 휘트스톤의 입체경을 개량했습니다. 그는 거울 대신 렌즈를 사용해 입체 그림은 크게 보이게 하고 입체경의 크기는 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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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David Brewster,1781–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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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의 입체경

빅토리아 시대

1851년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3D포토는 크게 주목 받았습니다.
빅토리아 여왕도 입체경을 선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입체경을 즐겼습니다.
유행은186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3D 포토 열풍이 절정에 달하던 1880년대,
컬러 인화 기술을 연구하던 프랑스 과학자 뒤코 뒤 오롱(Louis Ducos du Hauron)은 컬러 필터를 사용해
입체 이미지를 인화하는데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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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글리프 입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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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글리프(anaglyph) 입체사진

빨강으로 인쇄된 이미지에 녹색으로 인쇄된 이미지를 중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왼쪽 눈엔 빨강 필터, 오른쪽 눈엔 녹색 필터로 된 안경을 끼면 3D포토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감색법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에 애너글리프(anaglyph)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얕은 돋을새김 (low relief)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였습니다.

1950년대

1947년, 미국의 발명가 록화이트(Seton Rochwhite)는 35mm 필름을 사용해 3D 카메라인
“스테레오 리얼리스트(Stereo realist)”를 고안합니다.
이 카메라는3D 컬러 슬라이드를 촬영할 수 있었고, 감상을 위한 슬라이드 뷰어도 함께 제공했습니다.
스테레오 리얼리스트의 성공에 영향을 받아 코닥, 벨 앤드 하웰,등 많은 업체들이 3D카메라 생산합니다.
덕분에 3D 포토 열풍이 미국을 휩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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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레오 리얼리스트와 뷰어

그 무렵 텔레비전이 등장합니다.
들 불처럼 번지는 텔레비전의 보급은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을 안방에 묶어 놓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3D 입체영화였습니다.
1952년 말, 최초의 편광 컬러 3D 장편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합니다.
아치 오볼러(Arch Oboler) 감독의 < 악마 나리(Bwana devil)>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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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나리'의 포스터와 '악마나리'를 보고있는 관객들의 모습

이 영화의 포스터는 “달려드는 사자, 품 안의 여인”이라는 슬로건으로 3D영화의 사실감을 강조했습니다.
이 영화는 심형래 감독의 <디워(D-WAR)>처럼 평론가들의 혹평이 쏟아졌지만 사람들은 열광했고 크게 성공합니다.
대형 영화사들이 < 악마 나리(Bwana devil)>의 상업적 성공에 주목합니다.
이때부터 주요 영화사들이 3D로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하우스 오브 왁스 House of Wax>, <다이얼 M을 돌려라>, <Kiss me Kate>등이 이때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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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대 제작된 3D입체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 (House of Wax)'

3D입체영화는 관객을 되찾기 위한 이상적인 매체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3D영화는 두통과 구토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3D입체영화의 신기함이 점차 사라져가고 50년대 중반부터 3D 영화는 잊혀져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하장사 임꺽정(이규웅 감독,1968년 2월)’이 3D입체영화로 처음 제작되었습니다.
1시간 30분짜리 사극인 이 영화에서 입체영상은 후반부에 조금만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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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3D입체영화 '몽녀'

두 번째 입체영화는 ‘몽녀(夢女)’로 임권택 감독이 1968년 7월에 공개하였습니다.
김지미·박노식·남정임·이순재씨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후 국내에서 3D 영화는 거의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1980년대 3D입체영화는 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3D로 재촬영 되거나 가공되어 개봉되었습니다.  
<조스 3D>, <나이트메어Nightmare on Elm Streeet 3D>, <아미타빌의 저주Amityville Horror 3D> 등이 개봉되었고 <커밍 앳 유Comin’ at ya>로 시작해 <메탈스톰 Metalstorm>,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The man who Wasn’There> 등으로 유행은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입체영화는 점차 '아이맥스'같은 특수한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극장에서만 상영될 뿐, 다시 침체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현재 : 3D 입체영화의 재도약

“얼굴에 닿을 듯 눈송이가 떨어진다.”
“기차가 코 앞으로 선명하게 달려오고 급경사를 달릴 땐 숨을 조일 듯 위태롭다.”

2006년 개봉한 ‘폴라익스프레스(The Polar Express)’의 관람평입니다.
'폴라익스프레스'가 크게 성공하고 ‘치킨 리틀’ ‘몬스터 하우스’ 등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시장에서 입체영화는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로버트 제맥키스 감독의 ‘베어울프 3D’(BeoWulf 3D)가 개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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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 3D 영화의 포스터

2009년에는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Avator)가 개봉 예정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피터 잭슨 감독도 2009년 ‘틴틴’(Tintin)을 3D입체영화로 내놓을 예정입니다.
또한 드림웍스는 2009년부터 제작되는 모든 애니메이션을 3D로 만들겠다고 발표합니다.
이제 3D입체영화는 반짝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던 유행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재도약의 날개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실패한 발명가의 꿈 “입체영화”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는 활동사진(motion picture) 시사회를 열었습니다.
영화가 세상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대단한 성공을 거둡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보낸 것은 아닙니다.
프라이즈 그린(William Friese-Greene 1855–1921)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는 초기 영화 발명에 크게 기여했지만 어떤 권리나 영광도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미친 발명가로 영국 영화사에 기록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는 1889년 초당 10 여장의 셀룰로이드 필름을 연속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인
'크로노포토그래픽(chronophotographic)'으로 발명의 특허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카메라는 움직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에 매진합니다.
그 중에 “스테레오스코픽 카메라 (stereoscopic camera)”로 불리는 입체 촬영 장치도 있었습니다.
“스테레오스코픽 카메라”는 당시에 유행하던 사진 입체경을 영화에 도입한 최초의 실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실험을 완성하지 못하고 파산하고 맙니다.
그 후 그는 컬러영화 실험으로 어렵게 재기해보지만 결국 실패한 발명가로 잊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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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Friese-Greene

만약 그의 “입체영상” 실험이 계속되어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평면영화가 아닌 프라이즈 그린의 입체영화가 최초의 영화로 기록되었다면 분명 영화를 보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깊이와 입체를 느낀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은 뤼미에르 형제의 승리와 함께 잊혀져 갔지만 우리가 보는 그대로를 영상을 기록하고 싶었던 한 사람의 꿈, 그의 꿈은 이제서야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도 몇 년 후를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기술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입체영상으로 ‘시각’의 쾌감을 즐기고, 햅틱스 (haptics) 기술로 ‘촉각’을 느끼며, 12채널 사운드로 ‘청각’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올 지도 모릅니다.
실패한 발명가의 꿈이 현실로 바뀐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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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꼬마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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